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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 도쿄 리포트] 대중 백화점 전성시대의 종말
지난 9월 30일 58년 만에 폐점한 도쿄 시부야의 세이부 백화점.한때 '패션의 세이부'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최근 매출이 400억 엔대로 급감하며 결국 문을 닫았다.유성운 도쿄 특파원 지난 9월 30일 도쿄 시부야의 세이부백화점이 5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1968년에 문을 연 뒤‘패션의 세이부’로 불리며 시부야를 청년 문화의 발신지로 키워낸 상징적 공간이었다.1990년 967억 엔에 달했던 세이부백화점의 매출은 최근 400억 엔대로 줄었다.앞서 2023년에는 인근 도큐백화점 본점마저 폐점하면서,시부야에서 대형 백화점이 자취를 감췄다.
시부야만의 현상이 아니다.올해 2월에는 나고야역의 상징이던 메이테츠백화점 본점이 71년의 역사를 마감했고 운영사는 해산 절차에 들어갔다.일본 전국 백화점 수는 1999년에 311개에서 현재 176개로 40% 넘게 줄었다.백화점의 전성기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그렇다면 이 거대한 퇴조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탓일까,아니면 백화점이라는 업태 자체가 수명을 다한 결과일까.
흥미로운 것은 최근 문을 닫은 점포들의 공통점이다.도큐·오다큐·메이테츠 그리고 세이부까지 모두 철도회사에 뿌리를 둔 백화점이다.이 비즈니스 모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 인물과 마주하게 된다.한큐 그룹을 일군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다.
러일전쟁 직후 고바야시는 오사카 교외의 철도 건설에 뛰어들었다.그러나 노선 주변이 온통 논밭이라 “지렁이나 타는 철도(ミミズ電車)”라는 조롱이 쏟아졌다.그러자 그는 철길 주변 농지를 사들여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일본 최초로 장기 할부 분양주택을 판매했다.교외 주택에서 전차를 타고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샐러리맨 계층은 이렇게 탄생했다.주중 통근 수요를 일궈낸 고바야시는 주말 나들이 수요를 잡기 위해 종착역 다카라즈카에 온천 단지를 만들고 소녀 가극단 공연을 시작했다.이어 1929년에는 출퇴근과 나들이 인파가 모여드는 오사카 우메다역에 철도 직영 터미널 백화점인 한큐백화점을 열었다.
백화점 없어진 자리엔 오피스·상업 빌딩
한큐는 전통 포목점에서 출발한 미츠코시나 다카시마야 같은 고급 백화점과 출발선부터 달랐다.값비싼 명품 대신 철저하게 중저가 대중 노선을 택했다.퇴근길에 들러 장을 보고,주말에는 온 가족이 식당가에서 외식을 즐기는 생활 밀착형 거점이었다.집에서 역으로,역에서 일터와 나들이로 이어지는 삶의 동선 끝에 자연스럽게 소비가 자리 잡도록 설계했다.철도 노선 하나에 주거와 오락,
에볼루션 바카라 조작쇼핑을 엮어낸 이 모델을 민영 철도회사인 도큐·세이부·오다큐 등이 벤치마킹했다.도쿄의 이케부쿠로·신주쿠·시부야와 같은 큰 역에 자리 잡은 터미널 백화점들은 모두 고바야시가 남긴 유산이자,지난 한 세기 일본 대중소비사회가 빚어낸 화려한 무대였다.
그런데 그 후예들이 지금 스스로 백화점을 접고 있다.이유는 단순하다.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도큐는 2020년 시부야역 직결 도요코점을,2023년에는 본점을 닫았다.모두 역세권 재개발 때문이었고,새 빌딩에 백화점을 다시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도요코점 폐점 직전 도큐의 영업이익률은 부동산이 13.8%인 반면,백화점을 포함한 생활서비스 부문은 1.9%에 불과했다.2022년 신주쿠 본관을 닫은 오다큐도 부동산 22.9%,유통 1.7%로 비슷했다.오다큐 본관 자리에는 2029년 48층,높이 260m의 오피스·상업 복합빌딩이 들어선다.
백화점 폐점을 경기 탓으로 보기는 어렵다.최근 4~5년간 일본 백화점은 기록적인 엔저에 따른 방일 외국인 소비와 주가 상승효과가 맞물리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가파르게 늘었다.그러나 지난해에는 중국인 관광객 급감으로 면세 매출이 꺾이면서 전체 매출액이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일시적 호황의 거품이 걷히자 드러난 것은 구조적인 쇠퇴였다.거품 경제가 정점이던 1991년 9조7000억 엔에 달했던 백화점 시장 규모는 지난 30여 년 사이 6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본 유통업계는 백화점 몰락의 구조적 원인을 고질적인 거래 관행에서 찾는다.상품을 직접 매입하지 않고 팔린 만큼만 사후 정산하는 특정 매입 제도와 입점 업체 직원에게 판매를 맡기는 파견 점원 제도가 그것이다.재고와 인건비 부담을 털어낸 백화점은 당장은 손쉽게 마진을 챙겼으나 결국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매장 판매원 중 입점 업체 파견 인력의 비중은 1955년 3.3%에서 1997년 51.2%로 늘어났다.직접 물건을 고르고 파는 역량을 통째로 외주화하면서,백화점은 스스로‘목 좋은 부동산 임대업자’로 전락했다.
고바야시 모델의 핵심은 역에 모이는 사람의 발걸음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었다.그 원리는 지금도 유효하다.달라진 것은 그 발걸음을 수익으로 바꾸는 수단이다.백화점을 직영하는 것보다 고층 빌딩을 지어 오피스와 호텔,임대 상업시설로 운영하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가 되었다.철도회사는 고바야시의 원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같은 원리를 더 수익성 높은 방식으로 변경했을 뿐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양극화다.2024년 대도시 백화점 매출은 9.1% 늘어난 반면 지방은 1.9% 뒷걸음질 쳤다.협회 가맹 162개 점포 중 상위 10개 점포가 전체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가져간다.1위인 이세탄 신주쿠 본점은 2025년도 면세 매출이 133억 엔이나 줄었음에도 전체 매출은 4249억 엔을 기록하며 4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비결은 연간 300만 엔 이상을 쓰는 큰손들이다.이 점포가 올해 2월에 연 VIP 행사는 단 하루 만에 50억 엔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부유층과 관광객을 독점한 소수의 도심 고급 백화점은 살아남고,대중적인 백화점은 빠르게 도태되고 있다.
‘대중서 개인으로’전략 바꾸는 백화점들
이 빈틈을 파고든 것이 기획부터 제조,판매까지 일원화한 유니클로와 무인양품 같은 SPA 브랜드,교외형 대형 쇼핑몰,그리고 이커머스였다.고바야시가 끌어모았던 중산층 가족의 발길은 더 싸고 편리한 새 업태로 빠르게 옮겨갔다.독자적인 바잉 파워와 안목을 잃은 백화점은‘대중을 위한 큐레이터’라는 존재 가치를 잃었다.결국 대체 불가능한 명품관,최상위 VIP 전담 서비스,지하 식품관 정도만 겨우 살아남았다.
결국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은‘백화점의 종언’이라기보다‘대중 백화점의 종언’이라 부르는 편이 정확하다.백화점은 사라지는 대신 몸집을 줄여 부유층과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소수의 특화 거점으로 변신하고 있다.이세탄 신주쿠 본점이 내건 구호가‘대중에서 개인으로’라는 점은 상징적이다.역설적이게도 고바야시가 세운 한큐 우메다 본점은 여전히 일본 최상위권 점포로 건재하다.오사카 최대 터미널이라는 입지에 일찌감치 고급화 전략을 더해,대중 백화점에서 대도시 플래그십 점포로 성공적으로 갈아탄 덕분이다.
그러나 변신의 대가 또한 뚜렷하다.애초에 고바야시가 구상한 백화점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었다.할부로 교외 주택을 마련한 샐러리맨 가족이 주말마다 전철을 타고 나와 옷을 고르고,꼭대기 층 식당가에서 외식을 즐기던 생활의 중심이었다.누구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풍경을 공유하던 곳,바로‘1억 총중류(一億總中流·전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인식)’사회를 상징하는 거대한 광장이었다.그 상징적인 광장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일본 소비사회가 두터웠던 중산층의 시대를 지나 극단적인 양극화의 시대로 완전히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쓸쓸한 단면이다.
한국 역시 남의 일이 아니다.전국 백화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수도권의 소수 초대형 점포가 쓸어 담는 사이,지방 점포들은 줄줄이 문을 닫거나 존폐의 기로에 섰다.일상적인 소비가 쿠팡 같은 이커머스와 다이소로 대표되는 초저가 채널로 흩어지면서,백화점은 최상위 VIP 서비스와 초고가 명품으로 타깃을 좁혔다.중간 지대 없이 최상단과 최하단만 비대해진 한국 유통 생태계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다.
일본 대중 백화점의 몰락은 특정 업태의 단순한 부침이 아니다.그 이면에는 전후 일본의 번영을 지탱해 온 중산층 사회의 해체가 자리 잡고 있다.소수의 성채로 변신한 백화점과 초저가 플랫폼으로 흩어진 보통 사람들의 소비는,번영의 온기를 공유하던 사회적 연대의 균열을 여과 없이 비춘다.시부야 거리에서 백화점이 사라진 풍경은 단순한 공간의 재편이 아니라,
온라인슬롯 조작전 국민이 중산층이라고 믿었던 한 시대의 종언이자 가속하는 양극화 앞에 선 한국 사회가 마주한 거울이다.
이창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한(고려대)·일(도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일본학 3세대 학자.도쿄공업대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한국외대에서 재직 중이다.『지금 다시,일본 정독』 『아베노믹스와 저온호황』 『제도와 조직의 경제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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